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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삼겹살 회식을 하지 않는다. / 김태경 박사

축산정보뉴스 안영태 기자 |

AI 혁명이 왔다. 사람들은 이제 AI에게 묻는다. 기획서 초안을 AI가 쓴다. 회의록을 AI가 정리한다. 번역, 시장조사, 고객응대, 이미지 제작, 데이터 분석까지 AI가 맡는다. 한 사람이 온종일 붙잡고 있던 일이 몇 분 만에 끝난다. 그런데 이 변화는 사무실 안의 일하는 방식만 바꾸지 않는다. 회사의 구조를 바꾸고, 사람의 관계를 바꾸고, 끝내는 함께 밥 먹는 방식까지 바꾼다. 그래서 이번 칼럼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AI는 삼겹살 회식을 하지 않는다”

 

 

이건 AI가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산업화 시대와 대기업 조직문화가 키워 놓은 삼겹살 회식 수요가 AI 시대에는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삼겹살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가장 강력한 외식 메뉴였다. 그 수요를 떠받친 건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었다. 직장 회식, 부서 모임, 거래처 접대, 동료 친목. 삼겹살은 혼자 조용히 먹는 음식이기 이전에, 여럿이 불판을 가운데 두고 나눠 먹는 음식이었다. 바로 그 점이 지금 위태롭다.

 

가. 조직이 만든 수요

 

산업화 시대의 회사는 하나의 생활공동체였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같은 상사의 지시를 받고, 퇴근 후엔 같은 자리에 앉았다. 회식은 부담스러운 문화였지만, 동시에 사람을 조직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였다. 신입은 회식에서 선배를 알았다. 부서원들은 술잔과 고기 한 점을 주고받으며 업무 중엔 못 하던 이야기를 했다. 거래처와의 관계도 회의실보다 식당에서 더 부드럽게 풀렸다. 그 한가운데 삼겹살이 있었다.

 

삼겹살은 한국 회식에 딱 맞는 음식이었다. 가격이 만만했고, 굽는 과정이 대화를 만들었고, 상추쌈과 마늘, 쌈장, 김치, 소주가 자연스럽게 붙었다. 소고기처럼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었고, 치킨처럼 각자 조각을 집어 먹는 방식도 아니었다. 삼겹살은 불판을 공유하게 했다. 누군가 고기를 올리고, 누군가 뒤집고, 누군가 자르고, 누군가 “이제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이 과정 자체가 관계였다. 삼겹살 회식은 단백질 섭취가 아니라 조직의 어색함을 녹이는 사회적 장치였다.

 

나. 회사가 작아진다.

 

AI 시대의 회사는 산업화 시대의 회사와 점점 달라진다. 모든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AI가 회의록을 쓰고, 메신저가 지시를 나르고, 협업 툴이 진척을 관리한다. 옆자리 동료에게 물어보던 일을 이제 AI에게 먼저 묻는다. 선배가 가르쳐 주던 문서 작성법, 시장조사 방법, 보고서 구조, 이메일 문장까지 AI가 알려준다. 소통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과 AI, AI와 시스템 사이로 옮겨간다.

 

이 흐름은 1인 사업자의 증가와 맞물린다. 전문성을 가진 개인이 조직에 속하지 않고 혼자 사업을 꾸리는 일이 빠르게 늘고 있다.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마케터도, 개발자도 회사라는 울타리 없이 AI를 파트너 삼아 일한다. 예전 같으면 한 팀이 붙어야 했던 일을 한 사람이 AI를 옆에 두고 처리한다. 채용 시장의 언어도 바뀌었다. 이제 기업은 사람을 뽑을 때 AI를 다룰 줄 아는가를 먼저 본다. 조직은 얇아지고 개인은 독립한다.

 

회사가 작아지면 어떻게 되나. 직원이 줄고, 출근일이 줄고, 프로젝트 단위 계약이 늘고, 혼자 AI로 처리하는 일이 많아진다. “오늘 부서 회식하자”는 말이 줄어든다. 회식이 줄면 삼겹살 외식 수요가 흔들린다. 이것이 “AI는 삼겹살 회식을 하지 않는다”는 말의 첫 번째 뜻이다.

 

다. 사람이 늙어간다.

 

압박은 하나 더 있다. 회식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먹을 사람 자체가 늙어간다. 한국은 2025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젊은 인구는 줄고 노년 인구는 는다. 이 인구구조의 변화가 삼겹살 시장에 던지는 질문은 무겁다. 나이가 들면 몸이 기름진 고기를 예전처럼 받지 못한다. 소화가 부담스럽고 한 번에 먹는 양이 준다. 지방을 줄이려 하고 건강을 먼저 따진다. 두툼한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 소주와 함께 밤늦게 먹던 식사는 젊은 몸의 방식이었다. 나이 든 몸은 부드럽고 소화 잘되는 고기를 찾는다. 기름진 구이보다 삶고 찌고 데친 조리를 편해한다. 붉은 살코기, 저지방 부위, 잘 숙성한 고기 쪽으로 입맛이 옮겨간다.

 

삼겹살 소비의 가장 뜨거운 층은 20~40대였다. 이 층이 얇아지고 두꺼워지는 건 소식하는 고령층이다. 회식이 줄어드는 시대에 인구까지 늙어간다면, 삼겹살은 소비의 주력에서 두 방향으로 동시에 밀린다. 사람이 덜 모이고 모여도 예전만큼 못 먹는다. 이 대목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삼겹살은 여전히 돼지고기 소비의 압도적 중심이다. 한국인이 돼지고기를 살 때 가장 먼저 집는 부위가 삼겹살이고, 구워 먹을 부위를 고르라 하면 대다수가 삼겹살을 꼽는다. 이건 강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이기도 하다. 소비가 특정 부위, 특정 문화 다시 말하면 ‘구이’와 ‘회식’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면, 그 문화가 약해질 때 산업 전체가 흔들린다.

 

라. 그래도 길은 있다.

 

과거 한돈산업은 삼겹살 회식문화의 덕을 크게 봤다. 회식 수요는 개인 소비보다 강력했다. 개인은 가격을 따지고, 건강을 따지고, 양을 조절한다. 회식은 다르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주문하고, 부족하면 추가하고, 술과 찌개와 볶음밥까지 이어진다. 개인의 식욕이 아니라 조직의 분위기가 소비를 끌었다. 삼겹살은 단순한 부위가 아니라 한돈산업의 사회적 엔진이었다. 그 엔진이 식어간다. 회식이라는 대형 소비 단위가 약해지고 인구가 늙어가면, 소비자는 1인 가구, 2인 가구, 소규모 모임, 취향 공동체, 캠핑, 홈파티, 밀키트, 배달, 간편식으로 흩어진다. 실제로 배달 삼겹살 세트, 캠핑 밀키트, 캔 삼겹살 같은 형태가 이미 나왔다.

 

그렇다고 삼겹살의 미래가 어둡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기회는 여기 있다. AI가 사람의 일을 대신할수록 사람은 더 인간적인 경험을 찾는다. AI가 문장을 만들고 일정을 조율할수록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더 강하게 원한다. 냄새, 온기, 소리, 촉감, 맛, 눈빛, 농담, 침묵, 웃음. 삼겹살이 바로 그런 음식이다. 불판 위에서 지방이 녹고, 고기가 지글거리고, 김치가 익고, 마늘 냄새가 오르는 순간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시간이다.

 

AI는 회의록은 정리해도 “한 점 더 드세요”라는 정서는 건네지 못한다. 오늘 누가 기분이 안 좋은지 눈치채고 앞접시에 고기를 놓아주지 못한다. 건배를 못 하고, 굽는 타이밍을 놓친 뒤 웃으며 사과하지도 못한다. 이런 사소한 인간의 장면이 모여 식사가 된다.

 

 

마. 삼겹살을 다시 정의한다.

 

과거의 회식을 그대로 되살리자는 말이 아니다. 옛 회식엔 강압, 과음, 상명하복, 불필요한 장시간 체류가 있었다. 젊은 세대가 회식을 꺼린 이유가 거기 있다. 앞으로의 삼겹살은 과거 회식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소비의 창조여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만나고 싶은 식사여야 한다. “상사가 부르니까 가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보고 싶어서 가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돈산업은 삼겹살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삼겹살은 직장인의 회식 메뉴였다. AI 시대의 삼겹살은 인간적 연결을 회복하는 음식이어야 한다. 전자는 조직이 소비를 만들었고 회사가 비용을 냈다. 후자는 개인의 선택과 커뮤니티가 소비를 만들고, 소비자가 자기 시간과 감정을 투자한다. 전자는 많이 먹는 소비였고 후자는 의미 있게 먹는 소비다.

 

마케팅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회식 때 삼겹살을 더 많이 먹게 할까”에서 “회식이 줄고 사람이 늙어가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다시 삼겹살 앞에 모여야 하는가”로.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삼겹살은 그저 가격 경쟁 품목으로 남는다. 수입 삼겹살과 가격으로만 싸우고, 마트 할인과 외식 경기에 흔들린다. 답을 찾으면 다른 길이 열린다.

 

(1) 첫째, 작은 관계 소비를 설계한다.

앞으로의 소비 단위는 대형 회식이 아니라 2인, 3인, 4인의 작은 모임이다. 친구 둘의 저녁, 부부의 주말 식사, 1인 사업자들의 네트워킹, 프리랜서의 프로젝트 뒤풀이, 동호회, 지역 커뮤니티의 작은 식탁. 대형 회식용 삼겹살만 생각하지 말고 작은 모임에 최적화된 상품과 식당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300g·500g·700g 소포장, 냄새와 연기를 줄인 조리, 집에서도 실패 하지 않는 굽기 안내, 소스와 채소를 붙인 한돈 삼겹살 키트가 필요하다.

 

(2) 둘째, 혼자 먹어도 초라하지 않은 삼겹살을 만든다.

1인 가구와 1인 사업자가 느는 시대에, 삼겹살은 반드시 여럿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야 한다. 혼자 먹는 삼겹살이 자신을 돌보는 식사가 되어야 한다. 소량으로도 만족스러운 두께, 팬 조리에 맞는 절단, 에어프라이어·인덕션에 맞춘 설계, 기름 튐을 줄인 포장, 1인용 쌈 채소와 반찬 구성. 온종일 AI와 일한 사람이 저녁엔 자신을 위해 고기를 굽는 장면을 상상해야 한다.

 

(3) 셋째, 고령사회에 맞는 삼겹살을 준비한다.

인구가 늙어간다는 건 위기이자 새 시장이다. 나이 든 입맛은 기름 부담을 덜고 부드러움을 원한다. 지방을 정교하게 손질한 손질 삼겹살, 저온 숙성으로 결을 부드럽게 한 삼겹살, 굽지 않아도 되는 수육·보쌈·찜 형태의 한돈 상품, 소화가 편한 두께와 조리법을 제안해야 한다. 소식하는 노년층에게는 양보다 질이다. 부드럽고 소화 잘되는 단백질은 고령층에게 오히려 꼭 필요한 회복식이다. 삼겹살을 ‘젊은 몸의 구이’에서 ‘모든 세대의 단백질’로 넓혀야 한다.

 

(4) 넷째, 프리미엄과 이야기로 승부한다.

AI는 가격 비교를 더 쉽게 만든다. 소비자는 더 많은 정보를 쥔다. “국내산”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농가에서, 어떤 사료와 사육환경으로, 어떤 신선도 관리와 유통을 거쳐, 어떤 맛의 차이를 갖는지 설명해야 한다. 한돈 삼겹살은 수입 삼겹살과 단순 가격 싸움을 할 게 아니라 신선도, 풍미, 신뢰, 생산자 이야기, 지역성, 품종과 사양 관리의 차이로 소비자의 마음을 설득해야 한다. AI가 정보를 정리하는 시대일수록 브랜드의 이야기는 더 정직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5) 다섯째, 부위 균형을 잡는다.

삼겹살이 한돈 소비의 중심인 건 강점이다. 그러나 지나친 편중은 약점이다. 회식이 줄고 인구가 늙어갈 때 삼겹살 하나에만 기댄 산업은 위험하다. AI 시대의 개인화된 소비는 오히려 다양한 부위를 소개하기 좋은 환경이다. 건강 관심, 조리 편의, 가격, 단백질 목적에 따라 앞다리살, 뒷다리살, 등심, 안심, 목살, 갈비, 특수부위의 새 쓰임을 제안할 수 있다. 삼겹살은 한돈의 입구가 되고, 다른 부위는 한돈 소비의 확장이 되어야 한다. 삼겹살 의존도는 낮추면서 삼겹살의 가치는 더 높이는 것. 그 둘을 동시에 해야 한다.

 

(6) 여섯째, AI를 쓰되 사람을 향한다.

AI를 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AI는 소비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역별 수요를 예측하고, 취향을 세분하고, 식당 재고를 관리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리뷰를 읽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한돈산업도 AI를 적극 써야 한다. 다만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 AI는 도구이고 목적은 사람이다. AI로 더 싸게 파는 것만 생각하면 한돈은 가격 경쟁에 빠진다. AI로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람에게 더 좋은 식사 경험을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바. 사람은 왜 모이는가?

 

AI 혁명 시대에 한돈산업이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왜 앞으로도 삼겹살을 먹을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사람은 배고파서만 먹지 않는다. 위로받으려고 먹고, 관계를 확인하려고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먹고,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나누려고 먹는다. 삼겹살은 그 감정에 가장 가까운 음식이다. 고급 레스토랑 정찬보다 편하고, 패스트푸드보다 따뜻하고, 혼밥보다 관계적이다. 불판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서로의 속도를 맞추게 만드는 음식이다.

 

AI는 사람보다 빨리 계산한다. 더 많은 문서를 읽고,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더 많은 문장을 만든다. 그러나 AI는 배고픔을 모른다. 퇴근길의 허기를 모른다. 고기 굽는 냄새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래 참았던 말을 삼겹살집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오늘 고생했다”는 말을 고기 한 점에 담아 건네는 감각을 모른다.

 

그래서 한돈산업의 미래는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생산성, 가격, 유통 효율은 AI가 더 정교하게 만든다. 그러나 소비자가 한돈을 고르는 이유는 결국 맛, 신뢰, 추억, 지역성, 농가의 이야기, 함께 먹는 즐거움에 있다. AI 혁명 시대일수록 한돈은 더 사람 냄새 나는 산업이 되어야 한다. 돼지를 키우는 사람의 정성, 고기를 다루는 사람의 기술, 굽는 사람의 손길, 가족과 친구가 나누는 웃음. 그것이 한돈의 진짜 경쟁력이다.

 

회식은 줄어든다. 인구는 늙어간다. 피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변화다. 그러나 삼겹살의 역할이 끝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삼겹살은 새 시대의 인간적 만남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회식의 시대에서 관계의 시대로, 대량 소비의 시대에서 의미 소비의 시대로, 조직이 시키는 식사에서 개인이 고르는 식사로 옮겨가야 한다. AI는 삼겹살 회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삼겹살 앞에서 마음을 연다. AI는 불판을 가운데 두고 웃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고기 한 점을 나누며 다시 가까워진다. 이것이 AI 혁명 시대에도 한돈산업이 놓쳐선 안 될 가치다. AI는 삼겹살 회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삼겹살은 더욱 사람의 음식이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6년 8월호 110~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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