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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산업, 이제는 애그리비즈니스로 봐야 할 때 / 김태경 박사

 

오늘날 대한민국의 한돈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과거와 현저히 달라져 있다. 이제 돼지를 사육하는 일은 더 이상 구식 축사에서 가족 노동력에 의존하는 농사에 머물지 않는다. 수억원의 자본이 투입된 첨단 시설 속에서 전문 인력이 고용되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질병과 시장의 변동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중소기업형 경영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런데도 우리의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틀은 여전히 한돈산업을 전통적인 ‘농업’의 하위 범주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는 시대 변화의 속도와 산업 구조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관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 한돈산업을 단순한 축산업 일부로 보는 한계를 넘어 생산·가공·유통·서비스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의 관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 전환이야말로 한돈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국가 식량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1. 애그리비즈니스란 무엇인가?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는 흔히 농업(agriculture)의 영어 표현 정도로 오해되기 쉽지만, 그 실제 의미는 훨씬 더 깊고 넓은 개념이다. 이 용어는 1957년 하버드대학교의 존 H. 데이비스(John H. Davis)와 레이 A. 골드버그(Ray A. Goldberg)가 처음 제시한 것으로, 농업을 단순한 생산행위가 아닌 하나의 산업 시스템으로 확장하여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두 학자는 농업을 “밭에서 시작해 식탁에 이르는 전 과정”으로 정의하였으며, 농업과 관련된 모든 경제활동을 하나의 연속적 체계로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면 종자·비료·사료 등 투입산업(Input Industry), 재배와 사육 등 생산산업(Production Industry), 그리고 가공·유통·판매·서비스 등으로 이어지는 산출산업(Output Industry)을 하나의 연결된 가치사슬(value chain)로 규정하였다.

 

이 세 영역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의존적인 구조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완전한 산업 생태계를 이룬다. 따라서 애그리비즈니스란 농업을 단순한 1차 생산행위로 한정하지 않고, 자본·기술·정보·문화가 결합한 종합 산업 생태계로 인식하는 개념을 의미한다. 이는 농업의 영역에 산업과 경영의 논리를 투영하여, 농장에서 출발한 가치가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시각이다. 애그리비즈니스는 농업을 “하나의 경제시스템으로서의 산업”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가치의 창출과 전달, 그리고 순환의 구조를 탐구하는 현대적 농업경영의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다.

 

2. 농업의 산업화에서 경영화로 : 애그리비즈니스의 의미

 

농업의 산업화에서 경영화로의 전환은 애그리비즈니스 개념의 핵심에 해당한다. 전통적으로 농업의 현대화라 하면 기계화나 규모 확대와 같은 ‘산업화’를 연상하기 쉽지만, 애그리비즈니스는 그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토지를 경작하고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는 1차 생산활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농업을 하나의 기업으로써 관리·기획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영 행위로 인식하는 시각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농업은 더 이상 1차산업의 틀에 국한되지 않는다. 농산물 관련 연구개발(R&D), 식품 가공, 유통·물류, 마케팅, ESG 경영, 농촌 관광, 콘텐츠 산업 등 다양한 연관 분야가 모두 농업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실제로 세계의 선진 농업국들은 농업을 “국가 산업의 기반”이자 “지역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농업의 가치사슬 전반에 첨단 기술과 경영기법을 접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농업을 국가 경제의 전략 산업으로 바라보며, 생산에서 가공·유통·소비에 이르는 식품 시스템 전체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체계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농업은 더 이상 낡은 1차산업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산업(産業)으로서의 성격을 확고히 갖추어 가고 있다.

 

3.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한돈산업은 어떠한가?

 

애그리비즈니스의 프레임으로 한돈산업을 조망해 보면 그 구조는 이 개념에 정확히 부합한다. 우선 전방산업의 측면을 살펴보면 한돈 생산은 돼지산업에 특화된 다양한 연관 산업에서 출발한다. 양질의 사료를 생산하는 사료산업, 우수한 유전자를 보유한 종돈을 개발·공급하는 종돈산업, 질병을 방제하고 백신·치료제를 제공하는 수의방역산업, 그리고 현대식 돈사 시설과 자동화 장비를 제조하는 축산 기자재산업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러한 투입 산업들의 존재는 효율적 양돈 생산의 전제 조건이며, 그 규모 또한 이미 거대한 산업 영역으로 성장하였다.

 

다음으로 생산단계를 보면 오늘날의 한돈농장은 과거의 단순 축사가 아닌 첨단기술 기반의 스마트팜으로 변모하였다. IoT 센서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지능형 사양관리 시스템, 빅데이터 기반의 개체관리, 자동화된 급이·환기·온도 조절 등 첨단 기술이 동원되어 생산성이 극대화되고 있다. 또한 HACCP 인증제도와 돼지고기 이력제 등의 품질경영 시스템이 도입되어 위생과 안전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오늘날의 한돈농장은 일종의 소규모 공장과도 같으며, 표준화된 프로세스와 데이터 기반 경영을 통해 과학적 생산관리체계를 운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방산업, 즉 산출산업의 측면을 살펴보면 한돈은 농장에서 출하된 후 도축장과 가공업체를 거쳐 대형마트·정육점 등의 유통망, 외식 프랜차이즈와 식당 등 외식산업, 나아가 수출을 통한 글로벌 시장으로까지 확장된다. 또한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 마케팅, 요리 콘텐츠 제작, 푸드 페스티벌 개최 등 다양한 문화적·소비자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돈’ 브랜드를 중심으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거나, 젊은 세대를 겨냥한 디지털 캠페인을 전개함으로써 국내산 돼지고기를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돈산업에는 사료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이 완벽히 구축되어 있으며, 생산물의 가공·유통뿐만 아니라 소비자와의 소통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산업 연쇄가 형성되어 있다. 결국 한돈산업은 이제는 ‘돼지를 기르는 산업’이 아니라 전후방 산업을 포괄하는 완결된 종합 산업, 즉 한국형 애그리비즈니스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돈산업이 이미 농업의 경계를 넘어선 첨단 기술·경영·문화가 융합된 21세기형 산업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그런데 왜 아직도 농업으로만 불리는가?

 

그런데도 현실의 한돈산업은 여전히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농업’의 범주 안에 머물러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상의 분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현재의 법체계에서 한돈산업은 ‘축산’으로 분류되어 농업의 하위 부문으로 편입되어 있으며, 한돈농가의 경영주들은 법적으로 여전히 농업인(農民)으로 규정되어 있다. 또한 산업 정책에서도 한돈산업은 독립된 산업으로 다루어지기보다는 농업 보호를 위한 보조금 지급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돈농가들은 더 이상 과거의 영세한 자영농이 아니다. 현대적 양돈 경영에는 막대한 자본과 첨단 설비가 필요하며, 수의사·사료영양사·AI 분석가 등 전문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양돈농가 한 곳의 연간 평균 생산액은 약 11억원에 달한다. 이는 중소기업의 평균 매출액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제 한돈 농가의 경영주는 ‘농민’이라기보다 기업가이자 경영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생산뿐만 아니라 경영전략 수립, 리스크 관리, 시장 대응 등 기업경영의 전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한돈산업 전체의 경제 규모를 보더라도 이미 여느 제조업에 견줄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국내 양돈산업의 연간 생산액은 9조원을 넘어섰으며, 이는 대한민국 농업 부문에서 단일 품목 기준 최대 규모를 기록한 수치이다. 전통적으로 1위를 차지하던 쌀 산업을 제치고 농업 생산액 1위에 오른 것은 돼지산업이 이미 한국 농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한돈산업은 분류상 ‘농업’으로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경제적 위상에 있어서는 주요 제조업 부문을 넘어서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럼에도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한돈산업을 ‘농업’의 틀 안에서 바라본다. 생산자를 농민이라 호칭하고, 산업의 발전 방향을 투자와 혁신이 아닌 보호와 지원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이러한 인식의 간극이 산업 발전 전략의 혼선을 초래하고, 나아가 한돈산업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근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은 그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한돈산업은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농업이 아니라 기술·자본·데이터·서비스가 결합한 21세기형 산업 비즈니스로 인식되어야 한다.

 

5. 왜 한돈산업을 애그리비즈니스로 인식해야 하는가?

 

한돈산업의 정체성 전환은 단순한 명칭 변경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발전 방향과 국가적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적 과제이다. 그 필요성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정책적 관점에서의 이유이다. 한돈산업을 농업 일부로 한정할 경우 산업 지원정책은 보조금 중심의 단기적 구조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애그리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한돈산업은 기술혁신, 인력양성, 수출전략, ESG 경영 등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 정책의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보호받는 산업’이 아닌 ‘성장과 투자 대상 산업’으로서 정책의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 관점에서의 이유이다. 한돈산업은 생산, 가공,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후방 연관 산업을 포괄하는 완결된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이 구조는 일반 제조업이나 서비스산업과 다를 바 없으며, 국내 GDP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크다. 따라서 한돈산업을 독립된 산업군으로 재분류하면, 그 경제적 파급효과를 보다 정확히 분석하고 국가 산업전략의 핵심축으로 편입할 수 있다.

 

셋째, 사회·문화적 관점에서의 이유이다. 오늘날 돼지고기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푸드 콘텐츠, 외식문화, 지역경제, 관광산업과 결합한 문화산업의 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돈 브랜드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은 젊은 소비자층과의 연결을 강화하며, 국내산 돼지고기를 하나의 문화적 자산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돈산업이 이미 농업을 넘어선 종합 비즈니스 영역임을 보여준다. 결국 한돈산업을 애그리비즈니스로 인식한다는 것은 그 산업의 본질을 올바르게 규정하고, 기존의 보호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경영·혁신·문화가 결합한 산업 생태계로 재편하는 일이다. 이는 한돈산업이 한국의 미래 식품 경제를 이끌어 갈 핵심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필수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1) 오늘날 글로벌 축산식품 시장은 이미 다국적 식품 대기업과 기술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축산기업들이 생산에서 유통까지 전 과정을 수직계열화하여 통합 운영하고 있으며, 첨단 기술과 경영기법을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는 모돈 10만 마리 이상을 보유한 이른바 ‘메가 양돈기업’이 52개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무위안(Muyuan)은 모돈 313만 마리를 사육하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전체 모돈 사육 규모인 약 99만 마리의 세 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들 대형 기업들은 단순한 규모 경쟁을 넘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정밀 사양관리, 메탄 배출을 최소화하는 탄소저감형 사료 개발, ESG 성과를 투명하게 기록·공개하는 ESG 경영·회계 시스템, 그리고 전 세계를 연결하는 디지털 유통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산업의 모든 영역에서 최첨단 경영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양돈산업의 글로벌 무대가 더 이상 ‘농업’의 언어로 움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경쟁은 단순한 사육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자본·기술·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산업 경영의 효율성과 혁신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축산식품 산업은 이미 ‘농업’이 아닌 ‘산업 경영’의 패러다임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 한돈산업이 여전히 보호 위주의 농업적 틀 안에 머문다면,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에서 생존과 성장을 도모하기 어렵다.

 

국내 한돈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로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본의 효율적 운용, 기술혁신의 촉진, 데이터 기반의 경영관리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한돈산업을 세계적 수준의 산업형 경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결국 글로벌 경쟁의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체계’이며, ‘농업’의 시각이 아닌 ‘산업 경영’의 언어로 사고하는 기업형 사고방식이야말로 한돈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결정짓는 관건이라 할 수 있다.

 

(2) 한돈산업은 이미 기업적 구조와 규모를 갖추었음에도, 행정적·제도적으로는 여전히 농업보조 정책의 틀 안에 묶여 있다.

정부의 지원체계는 주로 생산장려금이나 가격안정 보조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며, 금융 및 세제 혜택 또한 농업인 범주 내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 구조는 한돈산업을 하나의 성장 산업으로 보기보다 여전히 보호와 지원의 대상으로만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돈산업을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로 인정할 경우, 정책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정부가 한돈산업을 ‘보호해야 할 농업 부문’이 아니라 ‘투자하고 육성해야 할 산업 부문’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한돈 관련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정책이 스타트업이나 제조업 투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확대될 수 있다. 또한 세제 분야에서도 연구개발비 공제, 시설투자 감면, 환경개선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등 산업 투자형 세제 혜택이 적용될 가능성이 커진다.

 

아울러 인력양성과 환경 규제 역시 산업적 현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축산 분야의 전문 기술인력 양성, ESG 기반의 환경관리 인센티브 부여,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등이 새롭게 추진될 수 있다. 이는 한돈농가의 자율 경영과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결국 한돈산업의 제도적 틀은 이제는 ‘농업 보조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부 정책은 보호 중심의 보조체계에서 벗어나, 산업으로서의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한돈산업이 스스로의 경쟁력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혁신과 투자를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가 완성될 것이다.

 

(3) 현대의 소비자는 더 이상 단순히 값싼 고기를 찾지 않는다.

식품을 선택할 때 그 품질뿐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스토리와 신뢰, 그리고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다. 이러한 시대에 한돈산업이 여전히 ‘농산물 생산’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면, 소비자에게 비치는 이미지는 전통적 농축산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돈산업이 브랜드를 가진 산업, 즉 명확한 정체성과 철학을 지닌 산업으로 거듭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위생과 환경을 철저히 관리하는 신뢰 산업,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문화를 창조하는 문화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킨다면, 한돈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국가적 신뢰 자산으로 인식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고베규(Kobe Beef)”나 이탈리아의 전통 식품산업처럼, 성공한 농축산 브랜드는 자국민에게 자부심의 상징이자, 세계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닌 국가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한돈 역시 ‘국내산 돼지고기’라는 단순한 원산지 개념을 넘어, 엄격한 생산기준과 사회적 책임 속에서 만들어지는 K-푸드 대표 브랜드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한돈자조금이 추진하는 각종 문화 콘텐츠 활동 예컨대 팝업스토어, 유튜브 캠페인, 브랜드 스토리텔링 영상 등은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돈산업을 단순한 생산의 영역에서 벗어나 소비자와 감성적으로 교류하는 문화 산업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돈산업을 애그리비즈니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순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 역시 새로운 차원으로 재정립된다. 산업이 지닌 가치와 이야기가 소비자에게 전달되어 공감대를 형성할 때 한돈은 국민적 신뢰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문화적 정체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한돈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단순한 생산량이 아니라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적 가치의 깊이에서 결정될 것이다.

 

6. 한돈산업의 미래는 더 이상 “돼지를 얼마나 많이 키우느냐”에 있지 않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돼지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가치로 키우느냐”로 전환되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량 증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앞으로의 한돈산업은 경영의 언어, 산업의 체계, 문화의 가치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곧 농업이 전통적 생산의 영역을 넘어, 기업의 언어로 말하는 단계로 진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돈농가들은 이제 단순한 생산자가 아니라, 데이터와 경영지표를 활용하여 위험을 관리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경영자적 사고를 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무를 다하는 ESG 경영을 도입함으로써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는 협력하여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혁신기술 스타트업과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실현될 때 한돈산업은 더 이상 정부의 보호를 요구하는 산업이 아니라 스스로 투자 가치를 지닌 혁신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한돈산업이 애그리비즈니스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면, 그 파급력은 지역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다. 한 곳의 돼지 농장이 사료공장, 물류회사, 도축·가공업체, 외식업체와 같은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연쇄 효과는 지역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로 이어진다. 실제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축산업은 전·후방 산업을 포함해 생산 유발액이 128조원을 넘는 거대한 산업이며, 그중에서도 한돈산업은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축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한돈산업을 지역 기반의 산업 생태계로 인식할 때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관련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게 될 것이다. 한돈산업이 스스로를 애그리비즈니스로 인식하는 순간 그 산업은 보호의 대상이 아닌 투자의 대상, 그리고 혁신의 주역이자 지역경제의 엔진으로 새롭게 부상하게 된다.

 

7. 결론 : ‘한돈=애그리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정체성

 

지금은 한돈산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한돈은 더 이상 단순한 농업이 아니다. 그것은 첨단 기술이자, 경쟁력 있는 브랜드이며,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산업적 언어이다. “농업의 테두리 안에 있는 양돈”이라는 낡은 관념을 넘어 한돈산업을 한국형 애그리비즈니스의 선도 모델로 재정의해야 한다. 그럴 때 한돈은 단순한 돼지고기를 넘어 대한민국의 식량 경제와 문화경제를 동시에 견인하는 전략 산업으로 도약할 것이다. 결국 한돈산업의 미래는 농업의 언어가 아닌 기업의 언어로 말할 때 완성된다. 그리고 그 순간 한돈은 대한민국의 산업 지형 속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할 것이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5년 12월호 101~1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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