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한국과 일본, 정책적 접근의 근본적 차이
한국 양돈산업이 일본과 다른 궤적을 그려온 데에는 정책 및 제도적 차이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농업보호 정책의 방향성에 있다. 일본은 게이트 프라이스 제도 등을 통해 돼지고기 수입을 관리하면서도 비교적 일찍부터 기업 주도의 산업 구조 개편을 용인했다. 반면 한국은 오랫동안 높은 관세와 수입 할당제로 돼지고기 시장을 보호하며 국내 영세 양돈농가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한국은 1990년대 말까지 돼지고기 수입을 부분적으로 제한했고, WTO 체제 이후에도 삼겹살 등 특정 부위에 할당관세를 적용하며 국내 시장 가격을 지지했다.
이러한 보호정책은 국내 생산자 기반을 지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국내 산업의 기업화·대형화가 지연되는 측면도 있었다. 일본은 수입을 막기보다 수입품의 가격을 조정하여 국내 산업을 간접 보호했고, 부족분은 해외로부터 조달하는 전략을 병행했다. 한국은 비교적 자급률이 높아 일본처럼 적극적인 해외 조달 전략을 펼 필요성을 덜 느꼈던 것도 정책 차이를 낳았다.
농지 소유 및 기업의 농업진출 규제에서도 차이가 컸다. 농지법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농업인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다는 원칙이 있어 비농업인(일반 기업)의 농지 취득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기업이 대규모 농지를 확보하여 양돈단지를 조성하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였다. 일본도 전후 오랫동안 기업의 직접 농지 소유를 제한했지만, 2000년대 들어 농지 임대차를 통한 기업농 참여를 허용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기업형 양돈장이 증가하여 농가당 사육 규모가 커지고(일본 양돈농가 수 약 3,370호에 불과), 기업이 농장을 인수하거나 신설하는 사례도 늘었다. 반면 한국은 현재도 양돈농가 수가 5천호 이상으로 일본보다 많고, 농가당 사육두수는 일본보다 적어 규모화 정도가 낮다. 이는 기업의 투자를 통한 규모 확대가 제약된 구조와 관련이 있다.
농업법인에 대한 자본규제도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비농업계 자본이 농업법인에 투자할 때 지분 제한 등이 있었으나 일본은 비교적 완화된 편이다. 외국자본의 농업법인 투자도 한국은 까다로운 절차와 산업자본 규제 분위기가 있었던 반면, 일본은 하이라이프 사례에서 보듯 해외 기업(태국 CP)이 일본 기업과 합작하여 일본향 생산에 참여하는 것을 수용했다.
정부의 농가 소득안정 제도에서도 접근법이 달랐다. 한국 정부와 생산자단체는 양돈농가 소득안정제를 운영하여 돼지 가격 폭락 시 보전금을 지급하거나 생산비와 연동하여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장치를 운용해 왔다. 한돈자조금 등을 통한 가격안정제, 일부 지자체의 생산비 보전금 등이 그것이다. 일본도 2020년대 들어 ‘육돈 경영안정 교부금’이라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한국은 그보다 이전부터 한돈협회를 중심으로 자율적 가격안정 제도를 운용해 왔다.
이런 소득안정 장치는 농가의 단기 경영위험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장환경 적응력 저하와 해외 진출 동기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에서 어려울 때 정부·협회 지원으로 버틸 수 있다 보니, 굳이 해외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유인이 크지 않았다. 반면 일본 농가들은 정부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어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
7. 한국 양돈산업의 구조적 한계와 해외 진출 부진 원인
이러한 정책적 배경 속에서 한국 양돈산업의 해외 진출이 미진했던 것은 여러 구조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산업 구조의 영세성과 대기업 부재다. 한국의 돼지 사육두수는 약 1,100만 마리로 일본(약 900만 마리)보다 많지만, 농가수가 훨씬 많고 농장당 사육 규모는 작다. 이는 여전히 가족농 또는 중소농 위주로 산업이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산자들은 내수 시장을 겨냥해 사업을 영위하며, 해외 투자를 감당할 자본이나 조직력이 부족하다.
축산 대기업이라고 할 만한 주체는 한국에선 사료회사 계열(예: 하림그룹의 선진, 팜스코 등)이나 축협 계통(도드람양돈농협 등) 정도인데, 이들도 국내 사육과 도축·가공에 주력해 왔지, 해외에 직접 농장을 운영한 사례는 드물다. 일부 선진(現 하림)은 베트남에 양돈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사료공장을 세우기도 했으나, 이는 현지 내수시장 공략이 주목적이었고 한국으로 역수출하는 구조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양돈산업에는 일본의 이토추·NH푸즈처럼 글로벌 전략을 펼칠 주체가 부족했다.
정부·산업계의 해외 진출에 대한 인식 부족과 지원 미흡도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일찍부터 식량의 해외 의존에 대비해 해외 농업 개발을 장려하고, 종합상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식량 확보에 나섰다. 반면 한국은 쌀 자급 등 국내 농업보호에 정책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축산 분야에서는 수출보다는 내수 안정이 우선시되었다. 정부의 지원도 주로 생산비 보전, 환경 규제 대응, 질병 방역 등에 집중되었지, 축산 기업의 해외 투자나 국제 합작에 대한 지원책은 찾기 어려웠다. 농림축산식품부와 KOTRA 등이 합작으로 해외 축산 시범단지 사업을 추진한 사례(예: 베트남 스마트팜 양돈단지 조성 등)가 최근에서야 등장했으나 이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산업계 역시 내수 시장이 성장세였던 과거 수십 년간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수출은 한우나 가금류보다 규제가 많은 돼지고기는 어려운 분야라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 한국 돼지고기는 구제역(FMD) 백신 정책으로 인해 수출이 제한되어 있었고, 수출이 가능한 홍콩·필리핀 등 일부 시장에 소량 진출하는 데 그쳤다.
질병 및 위생 이슈도 중요한 제약 요인이었다. 돼지의 경우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치명적 질병 발생 시 수출길이 막히는 특성이 있다. 한국은 2010년 구제역 사태 이후 백신 접종국 지위를 택하여 사실상 신선 돈육의 주요국 수출이 불가능해졌다. 일본은 2010년 구제역 발생 후 박멸에 성공하여 비접종 청정국 지위를 유지, 돼지고기 수출을 재개했다. 이러한 차이는 해외시장으로의 진출 여건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은 ASF도 2019년 이후 북한과 접경지에서 발생하여 방어 중이고, 이는 국내 산업을 해외에 홍보하기 어려운 요인이기도 했다. 방역 리스크가 해외 진출의 제약이 된 측면이 있다. 일본 역시 ASF 유입 위협이 있지만 미발생 상태이며, 오히려 ASF로 생산이 급감한 중국 등에 돼지고기 완제품(조리식품)을 수출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해외 시장 정보와 네트워크 부족도 심각한 문제였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전 세계 식품시장 정보를 수집하고 투자를 검토하는 전문 인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 양돈업계에는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희소했다. 일부 냉장육 수입업체나 식육무역 회사가 있지만 이들은 주로 수입 유통에 집중되어, 해외 생산거점 개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국제기구나 외국 정부와 교섭하여 농업 협력을 끌어내는 전문성도 일본에 비해 부족했다.
국내 시장의 구조적 특성도 해외 진출 동기를 약화했다. 한국 돼지고기 소비는 특정 부위(삼겹살 등)에 편중되고 가격 변동이 크며, 냉장육 선호가 강하다. 이로 인해 수입 냉동육은 주로 가공용이나 급식용으로 소비되고, 일반 소비자는 수입육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양돈업계 입장에서 해외에 가서 생산해도 결국 냉동육으로 역수입해야 하는데, 과연 수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반면 일본은 수입 냉장육 시장이 커서, HyLife처럼 냉장 상태로 선적하여 신선도를 살린 프리미엄 수입육이 받아들여질 토양이 있었다. 한국은 이러한 고급 수입육 시장이 크지 않았기에 해외에서 고급육을 만들어와도 판로 개척이 난관일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했다.
8. 변화의 신호, 새로운 기회의 창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변하고 있다. 국내외 환경변화로 인해 한국 양돈산업도 해외 진출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고, 실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먼저 시장환경의 변화를 보자. FTA 확산으로 수입 관세가 단계적으로 인하되고 있으며, 이는 국내 시장에서 수입육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동시에 국내 사육 비용은 지속 상승하고 있다. 사료비, 인건비, 토지비, 환경설비비 등 모든 항목에서 비용 상승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환경 규제도 강화되어 축산 악취, 분뇨 처리, 미세먼지 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선도 기업들이 해외 진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는 홍콩·몽골 등지에 한국산 돼지고기 수출을 추진하고 있고, 농식품부도 베트남 스마트팜 양돈단지 같은 ODA성 사업으로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아직 소규모지만 향후 해외 진출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신호다. K-푸드 열풍도 기회 요인이다. 한류와 함께 한국 음식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불고기, 삼겹살 등 한국식 돼지고기 요리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 돼지고기의 해외 브랜드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기술력 면에서도 한국은 충분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축적해온 사양관리 기술, 질병관리 경험, 우수한 양돈 인력은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ICT를 활용한 스마트팜 기술 분야에서는 오히려 앞서가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경쟁력 있는 양돈사업을 펼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다.
9. 한국형 해외 진출 전략,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양돈산업이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일본의 경험을 참고하되 우리만의 강점을 살린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5가지 방향의 접근을 제안한다.
(1) 전략적 해외 합작투자를 통한 생산기지 확보다.
한국의 사료·식품 기업이 중심이 되어 곡물 생산지 인근이나 수출 유리 지역에 현지 파트너와 합작으로 양돈농장이나 도축 가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미국 중서부, 브라질, 우크라이나 등 곡물 생산지 인근은 사료비 절감 효과가 크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은 아시아나 북미 시장 진출에 유리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KOTRA와 농식품부가 유망 투자처 정보 제공, 투자 리스크 보험, 저리 자금 지원 등을 통해 민간의 진출을 뒷받침해야 한다. 합작 형태로 진출하면 현지의 규제와 시장에 대한 이해를 보완할 수 있고, 자본 부담도 분산되므로 현실성이 높다. 특히 사료자급이 용이한 지역에 한국형 양돈단지를 조성하면, 국내에 들여오는 사료비를 절감하면서 현지에서 비육한 돼지를 한국이나 제3국에 공급할 수 있다.
(2) K-Pork 브랜드 구축과 글로벌 마케팅 전략이다.
한국산 돼지고기의 강점을 내세운 글로벌 브랜드 구축이 필요하다. "K-Pork"와 같은 통합 브랜드를 만들어 안전하고 맛있는 한돈 이미지를 해외에 심어주는 것이다. 한류를 활용한 마케팅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음식문화(K-푸드)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삼겹살, 불고기 등 한국식 돼지고기 요리를 테마로 현지 팝업 행사, 한식당 연계 프로모션을 전개하여 한국 돼지고기의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일본 HyLife가 도쿄에 레스토랑을 연 것처럼, 한국도 주요 타겟시장에 홍보 겸 판매 거점을 마련해 시식과 체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현지 유통망과 협업하여 한국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전용 코너를 슈퍼마켓에 운영하거나 온라인몰을 통해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등의 유통 채널 개척도 중요하다. 특히 할랄 시장 등 신흥시장 공략을 위해 할랄 인증 획득 및 현지 맞춤 브랜드 개발도 고려해야 한다.
(3) 수출 전략의 다변화와 점진적 확대다.
해외 진출은 직접 현지 생산뿐 아니라 수출 활성화를 통해서도 달성될 수 있다. 한국은 아직 돼지고기 수출량이 생산의 0.1% 미만 수준이지만, 이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고부가가치 가공육 수출과 특수부위 틈새시장 수출을 제안한다. 홍콩·마카오 등에 인기 있는 한국산 돼지 곱창, 머리고기 등을 수출하거나 일본에 수출 가능한 가공품(햄, 소시지)을 판매하는 것이다.
수출 경험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해외 시장의 요구를 알게 되고, 이는 향후 현지 투자 결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구제역 비접종 청정국 복귀를 목표로 삼아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업계가 협력하여 수출 대상국의 검역 협상을 조속히 진행하고, 필요한 경우 2국간 위생협정 등을 맺어 시장을 열어야 한다.
(4) 제도 개선과 정책 지원 체계 구축이다.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국내 제도를 손질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농지법상 기업의 농지 이용 제한을 완화하여, 기업이 임대 형태로라도 국내외에서 대규모 양돈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업법인에 대한 산업자본 지분 제한과 같은 규제가 있다면 개선하여 축산 분야에 국내외 투자가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축산 기업에 대해 컨설팅, 금융, 세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해외에서 양돈사업을 할 경우 초기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나 정책금융 대출을 지원하고, 현지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외교 채널을 통해 해결을 돕는 등의 서비스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의 해외 농업투자 시 JBIC(국제협력은행) 융자나 JETRO 정보지원을 제공한 선례를 참고할 수 있다. 한일 협력도 모색할 수 있다. 일본은 식량안보를 위해 더 많은 해외 생산거점이 필요한 상황이고, 한국은 해외 진출 경험이 부족하므로, 한일 양국 기업이 공동 투자 컨소시엄을 꾸려 제3국에 진출하는 모델도 생각해 볼 만하다. 이를 통해 양국이 서로의 강점을 활용하고 위험을 분담할 수 있을 것이다.
(5) 생산자 조직의 역량 강화와 의식 전환이다.
해외 진출은 기업만의 몫이 아니라 생산자 조직(양돈협회, 농협 등)의 참여도 중요하다. 양돈농협이나 한돈협회 등은 해외 연수 및 협력 교류를 통해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회원 농가들에게 해외 진출의 필요성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덴마크 등의 수출 성공 사례, 일본의 해외 진출 사례 등을 공유하여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협회 차원에서 해외 진출 전담부서를 설치하거나 해외 프로젝트 TFT를 구성해 지속해서 아이디어를 발굴해야 한다.
생산자 조직은 다수 농가의 이익을 대변하므로, 해외 진출의 과실을 조합원과 공유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지속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해외 양돈단지에 투자하여 수익이 나면 지분만큼을 조합원 지원에 쓰는 식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농가들도 해외 진출을 자신들의 사업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10. 미래를 향한 결단, 지금이 기회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해외 진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성장의 필수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은 국내 시장 한계를 극복하고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자본과 기술을 과감히 국외로 투입했고, 그 결과 세계 각지에 일본형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한국 양돈산업은 아직 해외 진출의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국내외 환경변화를 고려하면 더 이상 안주할 수 없다. FTA로 인한 수입 증가, 사육원가 상승, 환경 규제 강화 등으로 국내 보호막은 점차 얇아지고 있으며, 글로벌 경쟁은 심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형 글로벌 전략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 양돈산업은 그동안 축적해온 우수한 기술력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양관리 기술, 질병관리 경험, ICT 활용 능력 등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다만 이를 펼칠 무대가 국내에만 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제 변화의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K-푸드의 세계적 확산, 정부의 해외 농업 협력 정책 강화, 일부 기업의 해외 진출 시도 등이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체계적인 전략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정책적으로는 농업을 단순 보호하는 데서 나아가 공격적 해외 개척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규제를 혁신하고 민관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도 글로벌 투자와 협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 민간 차원에서는 전문 대형 주체의 육성이 필요하다. 사료기업, 식품기업 등이 축산부문에 참여하여 규모화를 이루고, 이들이 선봉에 서서 해외에 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이들 선도 기업에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한국판 NH Foods가 등장하도록 할 수 있다.
브랜드와 부가가치 창출도 핵심이다. 단순히 돼지고기 원료를 수출하거나 수입하는 것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브랜드 스토리와 고부가가치화가 필수적이다. 일본이 ‘안심·안전’을 키워드로 프리미엄 전략을 썼듯 한국도 ‘건강하고 맛있는 한돈’의 이미지를 과학적 데이터와 마케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해외시장에서도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을 할 수 있다. 위험 관리와 단계적 접근도 중요하다. 해외 진출에는 분명 리스크가 따른다. 따라서 소규모 수출 → 시범 투자 → 본격 투자의 단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초기에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 신뢰와 정보를 확보한 뒤, 점차 규모를 키워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협회, 기업간 긴밀한 정보 공유와 컨소시엄 구성이 중요하다.
“해외에 라면이나 김 등 kfood를 수출하는 나라”를 넘어 “해외에 돼지농장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는지, 여부는 지금 우리의 결단과 노력에 달려 있다. 한국 양돈산업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글로벌 무대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 때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그 변화를 가속화하고 체계화할 차례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5년 11월호 102~10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