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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돈 유통·소비시장 동향 및 소비시장 점검 / 김태경 박사

- 공급 감소와 소비 둔화의 이중 구조 속에서
김 태 경 박사

Ⅰ. 서론 : ‘고가격·저소비’라는 비대칭의 시장

 

2025년 상반기의 한돈(국내산 돼지고기) 시장은 전형적인 공급 주도형 불균형을 드러냈다. 고병원성 PRRS와 PED의 잇따른 발생으로 출하두수가 줄었고, 수입 물량도 동반 축소되면서 지육 가격은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경신했다. 공급 축소가 가격을 끌어올리는 동안 소비 측면에서는 고물가와 체감경기 둔화가 맞물려 수요가 식었다. 농가에는 단기적으로 가격 호재가 주어졌지만, 유통 단계에서는 “가격은 올랐는데 회전율은 떨어지는” 역설이 벌어졌다. 삼겹살 판매 부진과 재고 전환의 증가는 바로 이 비대칭 구조의 가시적 결과다.

 

이 불균형은 단순한 수급의 문제를 넘어선다. 정치·정책 환경, 소비심리, 디지털 유통의 구조변화가 서로 얽히며 시장 전반의 작동 원리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장을 읽으려면 공급·가격·심리·채널이 연결된 복합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한다.

 

Ⅱ. 정치·정책 전환과 한돈 소비 : 충격과 적응의 연쇄

 

(1) 단기 충격 : 소비심리의 급랭과 외식 수요의 후퇴

2024년 말~2025년 초의 정치적 불안정은 소비심리를 급랭시켰다. 외식·여가 지출이 우선 축소되면서 구이 중심의 외식 수요(삼겹살·목심)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가격은 오르는데 테이블 회전은 떨어지고, 고가 부위는 재고가 누적되는 이중고가 외식·유통 현장에서 관찰되었다.

 

(2) 적응 경로 : 내식 전환과 제품 포트폴리오의 이동

가계는 내식으로 되돌아왔다. 합리적 가격의 저지방 부위(앞다리·뒷다리·등심), 손질 부담이 적은 HMR·밀키트, 장기 보관 가능한 냉동 가공품으로의 대체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는 일시적 절약 행태를 넘어 소비자가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심으로 고기를 고르는 구매 규칙의 재설정으로 읽힌다.

 

(3) 정책 반응 : 비용 완화와 신뢰 복구

정부는 사료·물류비 부담 완화, 온라인 직거래 활성화, 수입육 유통 투명성 제고 등 비용과 신뢰 두 축에서 대응을 강화했다. 대형 유통과 연계한 할인·체험 캠페인은 얼어붙은 심리를 녹이는 완충장치가 되었고, 2025년 하반기부터는 내식·가공 중심의 소비가 서서히 반등했다. 저지방 부위의 건강·가성비 이미지가 강화된 것도 이 시기의 의미 있는 변화다.

 

Ⅲ. 구조 변화 : 가성비·웰빙·디지털의 삼각 구도

 

(1) 가성비의 정착

팬데믹과 정치·경기 변동을 거치며 가성비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구매의 상식이 되었다. 세일·번들·대용량이 강세를 보이고, 부위 선택에서도 “얼마나 맛있느냐”보다 “얼마나 효율적이냐”가 전면으로 부상했다. 이는 한돈이 가격 경쟁력과 가치 제안을 동시에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2) 웰빙의 심화

고단백·저지방 선호는 저염·무첨가, 에어프라이어 전용 상품, 다이어트·시니어 친화 레인지로 확장됐다. 과거 비선호였던 뒷다리·안심·등심이 단백질원으로 재조명되며, 건강 프레이밍을 갖춘 제품군의 개발 여지가 커졌다.

 

(3) 디지털의 가속

온라인몰과 라이브커머스는 한돈의 신규 접점을 넓히고 있다. 라이브 방송에서의 스토리텔링, 산지 직연결, 실시간 리뷰·리콜이 결합한 신뢰형 판매는 젊은 층의 진입장벽을 낮춘다. 디지털은 단순한 채널이 아니라 소통·검증·경험이 묶인 신뢰의 인프라다.

 

(4) 브랜드 신뢰의 회복

인증점 확대, 원산지 모니터링, 위생·품질 표준 고도화는 브랜드 신뢰의 기반이다. 체험형 캠페인(축제, 러닝, 쿠킹클래스)은 ‘품질의 사실’을 ‘체감된 가치’로 전환하는 감각적 교량으로 작동한다.

 

Ⅳ. 업계의 대응 : 균형 소비를 향한 실천 과제

 

(1) 외식 : 포맷 혁신으로 ‘한 마리 경험’을 표준화

한국의 돼지고기 외식은 오랫동안 삼겹살 중심의 직화구이에 의존해 왔다.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와 연기, 즉시 조리되는 현장성은 직화구이만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동일한 자극이 반복되는 구조는 산업적으로는 부위 편중·가격 변동성·저탄력 수요라는 한계를 낳았다. 이제 외식의 언어는 “삼겹 한 접시”가 아니라 “한 마리의 다양성을 경험하는 포맷”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조리 매체와 온도, 식감의 조합을 확장해 한 끼 안에서 돼지고기의 다층적 매력을 보여주는 설계가 필요하다.

 

 

하이브리드 조리 방식, 예컨대 삼겹살 구이×샤브샤브=무카타같은 새로운 포맷은 이 전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돔형 그릴의 중앙에서는 삼겹·목심을 짧게 구워 지방이 만든 고소한 향을 극대화하고, 가장자리 냄비에서는 앞다리·뒷다리를 얇게 썰어 샤브 형태로 익힌다. 이렇게 한 테이블에서 지방 부위는 직화로, 근육질 부위는 국물로 조리하면, 부위마다 고유한 질감과 풍미를 살리면서 동시에 소비의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는 “한 마리의 부위를 다 쓰는 조리학적 균형”이자, ‘부위 편식’을 ‘조리 편식’으로까지 확장해 교정하는 감각적 해법이다.

 

또한 메뉴 구성의 표준화도 중요하다. 예컨대 삼겹 120g(그릴)+앞다리, 뒷다리 120g(샤브)+항정 혹은 안심 50g(수비드 또는 로스트)으로 구성된 ‘한 마리 미니 코스’는 체류 시간 70~80분 안에 완결되는 합리적 조합이다. 국물의 종류(된장, 라임, 어장 등)나 소스, 허브(고수, 깻잎)의 선택권을 주면 건강·가성비·프리미엄 등 다양한 소비층을 포괄할 수 있다. 즉 삼겹 위주의 고정적 경험을 벗어나 맛의 온도차·식감의 대비·향의 레이어를 모두 체험하는 식사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포맷은 단순히 ‘멋진 메뉴’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효율과 표준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샤브 전용 고기는 1.8~2.2mm로 표준화하고, 프리미엄 컷은 저온 수비드 후 빠른 시어(sear)로 마감하여 조리 피크를 분산시킨다. 그릴→샤브→탄수 마감으로 이어지는 단순 동선의 서비스 루틴(SOP)을 정립하면 신규 인력도 숙련된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조리와 서비스가 구조화되면, 부위별 재고 회전율이 안정되고 식재 폐기율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나아가 외식 레퍼토리는 구이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 동파육, 돼지 차슈 라멘, 라구 파스타와 같은 요리는 부위별 특성에 맞는 조리 매체를 통해 각각 다른 층위의 풍미를 구현한다. 뒷다리살은 장시간 저온 조리로 젤라틴화해 부드럽게, 전지와 등뼈는 국물 요리로, 다짐육은 토마토와 와인 향의 라구로 변주할 수 있다. 이런 메뉴들이 런치·세컨드 메뉴로 확장되면, 구이×샤브의 저녁 포맷과 함께 온종일 돼지고기의 전 부위를 순환시키는 “조리 중심의 부위 균형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 외식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삼겹살을 더 잘 굽는 법”이 아니라, “돼지고기를 더 다채롭게 요리하는 법”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구이×샤브샤브, 동파육, 라멘, 라구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균형 소비의 운영체계다. 부위마다 적합한 매체와 온도를 만날 때, 식탁은 풍성해지고 산업은 안정된다. 포맷을 바꾸면 부위가 따라오고, 부위가 따라오면 구조가 바뀐다. 이것이야말로 외식이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강력한 방법이다.

 

(2) 리테일 : ‘부위명’에서 ‘용도’로 라벨링의 언어를 바꾸다.

“앞다리—제육/찌개”, “등심—돈가스/로스트”, “뒷다리 다짐—라구/볼로네제”처럼 조리 용도 중심의 라벨링·진열을 표준화한다. QR 레시피·영상 연동, 모둠팩·키트형 번들(삼겹+전지 소스)은 조리 부담을 낮추어 비선호 부위의 첫 구매를 유도한다.

 

(3) 가공(Value-add) : 지역·기술·브랜드의 삼위일체

앞다리, 뒷다리를 건조숙성 햄, 살라미, 파테, 수제 소시지로 전환하고, 지리적 표시제로 브랜딩한다(예: ‘제주 하몬’, ‘남원 살라미’). 미생물·pH·Aw 표준을 담은 제조 가이드라인과 위생·품질 인증을 통해 중소 정육점의 소형 가공 전환을 지원하면 생활권에서 균형 소비가 일어난다.

 

(4) 가격·프로모션 : 신호를 설계한다.

삼겹 구매 시 전지·후지를 묶는 교차 번들 할인, 부위별 도매지수의 공개(예: “금주 뒷다리 지수 80/평년=100”)는 소비를 합리적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장 신호가 된다. 공공 급식(학교·군·공공기관)에서 전지·후지 우선 구매와 메뉴 고도화를 병행하면 대량 흡수의 완충장치가 작동한다.

 

Ⅴ. 위험 관리와 회복력 : ‘외생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설계

 

질병, 곡물가, 정치·경기 같은 외생 변수는 상시적이다. 생산–유통–소비 전 단계에서 리스크 분산형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핵심은 데이터–표준–신뢰다. 가격·수급·품질·방역·환경 데이터를 표준화·공개하고, 이를 정책·현장 의사결정과 연결하면 시장은 예측 가능성을 회복한다.

 

Ⅵ. 결론 :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단품이 아니라 한 마리로

 

2025년의 한돈시장은 공급 감소와 소비 둔화라는 이중의 압력을 받았지만, 동시에 전환의 계시를 얻었다. 가성비·웰빙·디지털로 요약되는 소비 구조의 변화는 “싸게 많이”가 아니라 “합리·건강·경험”으로 소비가 재정렬되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업계가 외식 포맷 혁신, 용도형 라벨링, 프리미엄 가공, 교차 번들, 공공 급식이라는 실천적 해법을 더한다면, 한돈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소비되는 식품으로 재정의될 수 있다.

 

핵심 메시지는 간명하다. “한 마리를 다 먹는 문화”가 경쟁력이다. 삼겹만이 아니라 전지·후지·등심·안심·내장까지 부위를 가리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수급은 안정되고, 폐기·재고는 줄며, ESG의 사회적 수용성은 높아진다. 그 문화는 캠페인의 구호가 아니라 메뉴·라벨·가공·정책이 엮인 시스템에서 태어난다.

 

정치와 경기의 파고가 다시 높아져도, 데이터와 표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 시스템이 있다면 한돈산업은 흔들리지 않는다. 2025년의 위기를 넘어, 가치 중심·균형 소비·디지털 신뢰로 설계된 생태계—그곳에서 한돈은 다시 한국 식문화의 중심이자 지속 가능한 산업 자산으로 빛날 것이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5년 11월호 46~51p 【원고는 ☞ brandki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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