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는 아시아 최대 식품 전시회인 ‘FOODEX JAPAN 2025’와 동시에 ‘제49회 식육산업전(MEAT INDUSTRY FAIR 2025)’이 개최되었다. 올해로 49회를 맞은 이 전시는 일본 육류 가공·유통산업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B2B 중심의 전문 산업 박람회로, 실제 업계 종사자들에게 실질적인 기술 정보와 시장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장이었다. 필자는 이번 식육산업전에 직접 참관하며 다양한 전시 내용을 확인하고 현장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일본 식육산업이 직면한 변화의 양상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1. 2025 식육산업전 전시 구성 : 산업 체인의 모든 단계를 조망하다.
2025 식육산업전은 명확하게 목적에 따라 구성된 4개의 전문 존(ZONE)으로 나뉘어 있었다.
(1) MACHINERY & MATERIALS ZONE
육류 가공기계 및 소시지 제조기계를 비롯해 계량·포장·보관 장비, 위생 검사 및 품질관리 장비 등 생산과 유통의 전 과정을 커버하는 기계 및 자재들이 소개되었다.
(2) SPECIAL FOOD ZONE
육류 원물부터 육가공품, 식육을 응용한 가정간편식(HMR), 세계 각국의 특색 있는 고기 제품까지 다양한 상품이 전시되어 소비 트렌드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3) CONTEST & TESTING ZONE
일본 내 식육 제조업체 및 장인들이 참여한 콘테스트 및 제품 품질 평가가 이루어지며, 기술력과 제품 완성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섹션이었다.
(4) INFORMATION ZONE
관련 협회나 단체, 학계, 기관이 참여해 산업의 미래, 정책, 수출 전략 등에 대한 정보와 통계를 제공했다. 특히 AJMIC(전국식육사업협동조합연합회)에서는 고기의 날(肉の日) 홍보 활동을 진행했다. 고기의 날은 매월 29일을 고기의 날로 정하고 식당, 정육점, 프랜차이즈 업체가 할인 이벤트를 한다.
2. 기술 혁신 : 자동화와 위생관리의 정교한 진화
가장 눈길을 끈 공간은 역시 MACHINERY & MATERIALS ZONE이었다. 이곳에서는 대형 고속절단기, 자동분쇄기, 소시지 충진기, 포장라인 자동화 설비가 실시간 데모 시연을 통해 소개되고 있었으며, 고기 절단과 분류, 계량, 패키징까지 일관된 라인 구축이 가능한 고효율 솔루션들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일본의 몇몇 기계 업체들은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 대응형 설비를 중심으로 설계를 선보였다. 기계를 작게 만들고 조작이 간편하도록 인터페이스를 개선한 점, 세척이 용이한 구조로 위생관리를 강화한 점은 매우 인상 깊었다. 위생관리 영역에서는 자동 살균 분사 시스템, 실시간 잔류세균 측정기 등도 시선을 끌었다.
3. 제품 트렌드 : 건강, 프리미엄, 편의성
SPECIAL FOOD ZONE에서는 일본 소비자들의 건강 지향 트렌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저염육, 무첨가물 소시지, 알레르기 유발 성분 제거 제품들이 다수 출품되었다.
특히 고령 인구를 위한 ‘연화 가공육(부드럽게 만든 고기)’과 소화가 쉬운 단백질 식품이 많았는데, 이는 단순한 기능식품이 아닌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식사’라는 감성까지 포괄하는 기획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수출을 염두에 둔 프리미엄 브랜드화 제품들도 적지 않았다. 일본 와규의 고급 이미지를 살려 기념일 선물용 패키지를 구성하거나, 스토리텔링이 담긴 농장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은 한국 축산물 마케팅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4. 지속 가능성과 ESG 대응
전시 전반에 걸쳐 확인된 키워드는 단연 지속 가능성이었다. 가공공정에서는 에너지 절감형 설비, 식품 폐기물 최소화, 위생·유통 자동화가 눈에 띄었고, 포장 영역에서는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필름, 생분해성 패키지, CO2 배출 절감 인증 제품들이 등장했다.
특히 일부 기업은 탄소 배출량 추적 시스템을 적용해 생산부터 물류까지의 환경 영향을 수치화해 공개하고 있었으며, 이는 유럽 시장에서 점점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ESG 기준 대응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흐름은 머지않아 한국 축산기업들에도 직접적인 기준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5. 정보 공유와 국제화
INFORMATION ZONE에서는 일본 육류가공협회, 수입육무역협회, 농림수산성 산하단체 등이 다양한 통계자료와 미래 예측 리포트를 전시해, 일본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대응 전략을 제시하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띈 부분은 일본 국내 육류 소비 감소였다.
특히 눈에 띈 부분은 일본 국내 육류 소비 감소를 외국인 관광객 소비와 수출로 돌파하려는 전략이었다. 식육산업전 곳곳에서 할랄 인증 와규, 글루텐프리 고기 가공품, 비건 대응 혼합 식단 제품이 소개되며, 동남아시아와 중동, 유럽 시장을 타깃으로 한 수출용 기획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일본 내 농가와 가공업체가 협력해 만든 지역 브랜드육(Local Beef Brands)은 단순한 생산자 중심의 공급이 아닌, 브랜드화된 농가 스토리와 함께 ‘경험 기반 소비’를 유도하는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었다. 예컨대 규슈 지방의 한 브랜드는 ‘눈 내리는 언덕에서 방목된 송아지’라는 감성적인 브랜딩을 통해, 고기 한 점을 넘어서 그 뒷배경까지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접근을 보여줬다.
6. AI, IoT, 로봇 기술의 접목 : 스마트 식육산업
올해 식육산업전의 또 하나 특징은 스마트 기술의 현장 적용이었다. 몇몇 부스에서는 AI를 활용한 육질 분석 시스템과 자동 등급 분류 소프트웨어가 실시간 시연되었고, 특정 고기의 지방분포나 색상을 인식하여 등급을 자동 부여하는 기술은 대형 도축장뿐만 아니라 중소 정육업체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IoT 기반 온도 추적 패널, 스마트 유통 박스, QR코드를 활용한 제품 이력 조회 시스템 등도 다수 소개되었는데, 이는 코로나19 이후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투명한 유통’에 대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로봇 기술도 실용 단계에 들어섰다. 특히 초고령화와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본 내 유통 현장에서는 고기 슬라이싱 자동화 로봇, 포장 자동화 암(Arm), 자동 위생 세척기 등이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 이미 몇몇 현장에서는 인력 대비 생산성이 3~4배 향상된 사례가 발표되었고, 이와 같은 흐름은 한국 축산현장에도 곧 영향을 줄 전망이다.
7. 일본 외식시장과의 연계 시도
식육산업전은 단순히 생산자와 기계 업체만의 장이 아니라, 외식 프랜차이즈와 연계된 기획도 눈에 띄었다. 실제 일본의 일부 외식 브랜드는 자사 외식용 특수 부위를 가공업체와 공동 개발해 ‘B2B2C 맞춤형 육가공품’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한 유명 야키니쿠(일본식 구이) 체인에서는 자사 매장에서 쓰는 특제 마리네이드 육류를 그대로 소매화하여 편의점 전용 제품으로 납품하고 있었고, 이와 관련한 물류, 패키징, 브랜드 협업 스토리가 전시장 내 정보 세션에서 공유되기도 했다. 이는 육류산업이 단순히 1차 생산과 가공을 넘어 외식·유통·브랜딩·콘텐츠화로 확장되는 구조임을 의미하며, 육가공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새로운 영역의 협업 기회를 제시하고 있었다.
8. 한국 업체 및 관계자들의 참여
이번 전시회에는 한국의 여러 식육 가공업체, 무역회사, 관련 기자재 기업들도 참가하거나 참관객으로 현장을 방문했다. 일부 기업은 일본 바이어들과 수출 상담을 진행하였고, 특히 돼지고기 가공품과 프리미엄 한우 부위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 특히 건강을 우선시하는 소비자를 위해 무설탕 불고기 제품을 소개한 업체도 있었다. 대체당인 알룰로스를 사용하여 설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맛을 내는 제품을 선보였다.
또한 한국 대표단 중 일부는 일본의 위생관리 체계, HACCP 인증을 넘어서는 지역 위생 프레임워크, 가공품 단위의 제품이력 추적 방식에 주목하며 현장 관계자들과 구체적인 교류를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 축산 가공품의 고급화 및 감성화 전략’에 대한 니즈가 높았으며, ‘단순히 좋은 품질’이 아닌, ‘좋은 이유를 이해시키는 기획력’의 필요성이 반복해서 언급되었다.
9. 고기 산업은 기술 산업, 콘텐츠 산업, 신뢰 산업이 되어야 한다.
2025년 식육산업전은 축산 가공산업이 단순한 ‘고기 장사’가 아닌, 첨단 기술, 소비자 감성, ESG 의무, 글로벌 마케팅까지 포함한 복합 산업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현장에 직접 서 있으니 ‘고기’라는 단어가 단지 한 조각의 식재료를 넘어 한 나라의 생산, 소비, 환경, 문화, 미래까지 연결된 하나의 집약된 산업의 거울처럼 느껴졌다.
한국 축산 가공산업이 일본처럼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있고, 기후와 유통환경, 소비 트렌드에서도 유사점을 갖는 만큼, 이번 전시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전략적 벤치마킹의 현장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식탁 위 고기의 정의는 변하고 있다. 맛있기만 한 고기가 아니라 왜 이 고기를 선택하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산업, 그 방향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2025 식육산업전은 분명 귀중한 좌표가 되어줄 것이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5년 5월호 66~71p 【원고는 jyna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